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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타리 초대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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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원주 조회 10,887회 작성일 2013-07-13 22:56:5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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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타리 최초의 사무총장
 

 
 
최초의 사무총장 체슬리 R. 페리

타리에는 지금까지 12명의 사무총장이 재직했다.      
최초의 사무총장은 체슬리 레이놀즈 페리(Chesley Reynolds Perry)였다. 그는 미국-스페인 전쟁 참전 용사였으며, 시카고 공립 도서관 직원으로 근무한 바 있다.    
1910년 8월, 새롭게 결성된 로타리클럽 전국 연합회는 만장일치로 페리를 사무장(당시의 명칭)에 선출했다. 그는 월 100달러 봉급의 파트타임 직을 수락했는데, 그가 이 일에 얼마의 시간을 쏟을지는 구체적으로 명시되지 않았다.   
1912년, 이 직책은 풀타임이 되었고, 이사회는 페리의 연봉 인상을 가결했다.   
시카고, 라살 스트릿에 있던 그의 사무실은 전국연합회의 본부 역할을 했다. 1911년, 로타리는 디어본과 몬로 스트릿의 퍼스트 내셔널 뱅크 빌딩에 사무실을 마련했다. 그 후 페리의 임기가 끝날 때까지 로타리 본부는 다섯 번을 이전했다.    
페리는 32년 동안 근무한 최장기 사무총장이란 기록을 갖고 있다. 그는 1911년부터 1928년까지 로타리안 잡지의 편집장 겸 운영 책임자로도 활약했으며, 1925년에는 최초의 국제지국인 스위스, 취리히 지국을 오픈하기도 했다. 집무 마지막 해인 1941-42년에 그의 직함은 사무장에서 사무총장으로 격상되었다.     
1940년, 그는 은퇴를 발표했으나 후임자인 필립 C. 러브조이(Philip C. Lovejoy)의 연수가 끝날 때까지 자리에 머물기로 하였다. 일부 클럽들이 그를 1942-43년도 RI 회장으로 추대하려 하였으나 그는 "지금까지의 찬사와 지원으로 충분하다"는 말과 함게 정중히 사양하였다.    
은퇴 후 페리는 시카고 로타리클럽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1944-45년에 동클럽 회장을 지내기도 하였다.  1954년, 로타리는 그에게 명예총장직을 제안하였지만, 그는 "평범한 로타리안으로 지내고 싶다"면서 다시 한 번 사양하였다.    
그는 1960년 2월 21일, 8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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