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로타리 70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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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진하여 인도적인 봉사에 이바지할 것과 모든 직업에 있어서 높은 도덕적 수준을 지킬 것을 장려하며 세계적인 친선과 평화의 확립에 이바지할 것을 목적으로 하는 순수 민간단체이다.
중앙사무국은 미국 일리노이주의 에번스톤에 있다. 1905년 2월 23일 미국 시카고에서 폴(Paul,H.)이 친구 3명과 같이 창설하였다. 초대 회장은 시일(Schiele,S.)이 맡았으며, 로터리클럽의 명칭은 각자의 직장을 순회하며 화합을 가진 데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우리 나라에는 1927년 경성클럽을 효시로 1935년 부산, 1937년 평양, 1938년 대구클럽 등이 계속 결성되었는데, 민족항일기였기 때문에 그 주축은 일본인이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1940년 클럽활동이 중단되었다가, 광복 후인 1949년 3월 서울로터리클럽이 우리 나라 사람의 손으로 재건되어 국제로터리본부의 승인을 받았다(초대 회장 崔淳周, 창립회원 25명). 이어서 1952년 1월 부산클럽, 1954년 대구클럽, 1957년 인천·대전클럽, 1959년 광주클럽 등이 각각 결성되었다.
1961년에는 국제로터리이사회의 의결을 얻어 한국지구로 승격되었고, 그 세력이 계속 확장되어, 1998년 7월 현재 17개 지구 1,045개 클럽 4만 1000여 회원을 가지고 있다.
각 로터리클럽은 1직업 1회원제를 원칙으로 한 회원들이 상호간의 친목을 꾀하고 클럽의 봉사목표를 토의하기 위하여 매주 1회 회합을 가진다.
로터리 표어는 ‘가장 훌륭하게 봉사하는 사람이 가장 많은 거두어들인다.’와 ‘초아(超我)의 봉사’이다. 활동을 원활히 하기 위하여 4개 봉사위원회(클럽·직업·사회·국제위원회)를 구성하고 있다.
국제로터리클럽은 1947년에 로터리재단을 발족하여 해외 친선사절 장학사업(단일학년 장학생, 복수학년 장학생, 문화사절 장학생), 연구교환단 사업, 소아마비 박멸운동, 상응보조금사업, 보건·기아추방·인간존중사업(3-H Program Grants for Health, Hunger, Humanity) 등의 다양한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국제로터리본부는 6·25전쟁 때 각국 로터리클럽에서 수집한 수많은 의약품·구호품·학용품 등을 국내 로터리클럽 또는 적십자사를 통해서 배포한 일이 있었으며, 우리 나라 로터리 발전에 많은 지원을 하였다.
우리 나라 로터리 회원들은 1972년 한국로터리 장학문화재단을 만들어 약 210여억 원의 기금을 확보하여, 매년 전문대학 이상 학생 1,500명에게 30억 원의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1997년 말 현재 1만 3000여 명의 학생이 혜택을 받았다. 또, 국제로터리로부터는 매년 장학생을 배정받아 해외에 유학시키고 있으며, 1997년 말 현재 900여 명의 해외유학생을 배출하였다.
1998년도에는 국제로터리로부터 118명의 장학생을 배정받아 해외에 유학시킬 예정이다. 1970년 9월 20일부터 4일간 국제로터리 75주년을 기념하는 아시아지역대회가 세종문화회관에서 15개국 회원 및 가족 9,104명이 참석하여 개최된 바 있으며, 1989년에는 5월 21일부터 25일까지 5일간에 걸쳐 국제로터리 세계대회를 서울에서 개최하게 되어 있다.
이는 국제로터리에 가입한, 159국 중에서 15번째로 주최국이 되었으며, 86개국 3만 800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국제로터리세계대회 개최사상 2번째 성대한 행사로 기록되었다.
이는 우리 나라의 국력신장과 더불어 한국로터리언의 면모를 세계로터리언들에게 보여주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국제로터리의 지역잡지로 인정받은 ≪로터리코리아 The Rotary Korea≫를 월간으로 발간하고 있다.
1998년 기준 160여 개 국가나 지역에 2만 8000여 개의 로터리클럽에 120만 명의 로터리언이 있으며, 본부에서 발간되는 영문판 ≪로터리언 The Rotarian≫과 스페인어판 ≪레비스터 로터리아 Revista Rotaria≫ 및 25개 지역의 잡지가 나오고 있다.
참고문헌
- 『한국로터리70년사』(한국로터리70년사편집위원회 편찬, 1998)
[네이버 지식백과] 국제로타리클럽 [國際─]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